일본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의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출간을 맞아 코다코리아와 사계절출판사가 릴레이 서평을 올립니다.
두 번째 순서는 코다코리아 사무국에서 일했고 현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장현정 코다입니다. 같은 코다이지만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코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코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농인 부모의 자녀를 말합니다. 코다는 농인 부모로부터 수어와 농문화를 습득하고 청사회로부터 음성언어와 청문화를 접하며 자랍니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코다코리아는?
코다코리아는 코다의 모임이자 네트워크입니다. 코다의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돕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영케어러 코다의 어려움을 해소합니다.
코다코리아 X 사계절출판사『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릴레이 서평 ②
들리는 세상에서 아직 듣지 못한 것은
_장현정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나는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보통의 청인들보다 더 많은 소리에 관심 갖고 듣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부모님에게 전해야 하는 말부터 음성언어 위주의 사회에서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여러 정보, 북적거리지만 고요한 집 안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음까지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정작 내 부모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적이 있었나?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한평생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로 살면서, ‘코다코리아’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비슷하고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내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으면 결국 넘겨짚기가 되어버린다. 코다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 많은 코다들의 삶을 마주했고 그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지만 내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많은 것이 비슷해도 일부러 찾아가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각각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의 이가라시 다이는 어머니 ‘사에코’의 고유한 역사를 들여다보기 위해 개인의 일화뿐만 아니라 농인의 역사부터 일본에 있었던 우생보호법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사에코의 역사는 결코 사사롭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부모 긴조와 나에코는 어떻게든 딸 사에코의 ‘귀를 고쳐주기’ 위해 병원에 데려가고, 딸에게 수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사에코는 언어를 모르고, 자기 의사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채로 초등학교를 비非 농학교로 진학해 수업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장애를 가진 자녀를 아끼고 귀여워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수어와 농인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시대상의 반영이다.
중학교를 농학교로 진학한 이후 사에코의 시간은 이야기를 듣는 다이가 부러워할 만큼 풍요로운 청춘이었다. 농학교에서 수어를 배우고, 수어를 할 수 있는 청인 오누마 선생님을 통해 ‘말이라는 개념’을 깨닫고 청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오누마 선생님에게도 농문화와 수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청각 활용을 위주로 교육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누마 선생님에게 하루라도 빨리 수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것은 농인 학생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었다.
이 책이 농학교에서 빛나는 청춘을 보낸 어머니 사에코와 아버지 고지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마무리되었다면 동화 같은 이야기였겠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사에코와 고지의 결혼 생활은 주변 청인들로 인해 난항을 겪게 된다. 농인끼리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울 테니 청인 가족이 키우겠다는 이야기는 청인의 ‘선의’였겠지만 결국 농인을 억압하고 고립시키는 차별이다. 사에코에게서 듣게 된 일들을 통해 다이는 일본에 있었던 우생보호법을 맞닥뜨리게 된다.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되었던 우생보호법은 유전병을 지닌 사람과 장애인의 출산을 막고 여성이 가진 임신·출산 기능을 국가에서 통제하겠다는 일종의 악법이다. 피해자들은 장애를 이유로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고, 그로 인해 불임뿐만 아니라 수술로 인한 통증과 후유증으로 더욱 고통받았다. 다이는 본인의 어머니가 겪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찰나의 안도를 죄책감으로 여긴다. 다이는 이 부당한 시기의 일들을 더욱 파헤치고, 직면하려 한다. 우생보호법은 없어졌지만 그 피해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는 심적 공포를 딛고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어머니 사에코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다이의 의지는 결코 사적인 분노만은 아닐 것이다.
들리는 세상에서 아직 듣지 못한 것은 더 많은 농인과 코다, 농인 가족의 이야기다. 많은 코다들이 자신의 역사, 농인 부모의 고유한 이야기를 일부러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표현하기를 바란다. 이가라시 다이는 어머니 사에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사에코의 과거뿐만 아니라 자신의 뿌리,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또한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는 사람을 발견하면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겠다(187쪽)고 마음먹었다. 이것은 다이의 개인적인 목표이면서 강한 연대의 의지일 것이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를 통해 나 또한 부모님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 가정의 단순한 일대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차별받았던 소수자의 언어로서 존재할 것이다. 차별과 편견에서 기인한 부당한 것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싶다.
_장현정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나는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보통의 청인들보다 더 많은 소리에 관심 갖고 듣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부모님에게 전해야 하는 말부터 음성언어 위주의 사회에서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여러 정보, 북적거리지만 고요한 집 안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음까지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정작 내 부모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적이 있었나?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한평생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로 살면서, ‘코다코리아’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비슷하고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내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으면 결국 넘겨짚기가 되어버린다. 코다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 많은 코다들의 삶을 마주했고 그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지만 내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많은 것이 비슷해도 일부러 찾아가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각각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의 이가라시 다이는 어머니 ‘사에코’의 고유한 역사를 들여다보기 위해 개인의 일화뿐만 아니라 농인의 역사부터 일본에 있었던 우생보호법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사에코의 역사는 결코 사사롭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부모 긴조와 나에코는 어떻게든 딸 사에코의 ‘귀를 고쳐주기’ 위해 병원에 데려가고, 딸에게 수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사에코는 언어를 모르고, 자기 의사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채로 초등학교를 비非 농학교로 진학해 수업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장애를 가진 자녀를 아끼고 귀여워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수어와 농인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시대상의 반영이다.
중학교를 농학교로 진학한 이후 사에코의 시간은 이야기를 듣는 다이가 부러워할 만큼 풍요로운 청춘이었다. 농학교에서 수어를 배우고, 수어를 할 수 있는 청인 오누마 선생님을 통해 ‘말이라는 개념’을 깨닫고 청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오누마 선생님에게도 농문화와 수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청각 활용을 위주로 교육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누마 선생님에게 하루라도 빨리 수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 것은 농인 학생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었다.
이 책이 농학교에서 빛나는 청춘을 보낸 어머니 사에코와 아버지 고지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마무리되었다면 동화 같은 이야기였겠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사에코와 고지의 결혼 생활은 주변 청인들로 인해 난항을 겪게 된다. 농인끼리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울 테니 청인 가족이 키우겠다는 이야기는 청인의 ‘선의’였겠지만 결국 농인을 억압하고 고립시키는 차별이다. 사에코에게서 듣게 된 일들을 통해 다이는 일본에 있었던 우생보호법을 맞닥뜨리게 된다.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되었던 우생보호법은 유전병을 지닌 사람과 장애인의 출산을 막고 여성이 가진 임신·출산 기능을 국가에서 통제하겠다는 일종의 악법이다. 피해자들은 장애를 이유로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고, 그로 인해 불임뿐만 아니라 수술로 인한 통증과 후유증으로 더욱 고통받았다. 다이는 본인의 어머니가 겪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찰나의 안도를 죄책감으로 여긴다. 다이는 이 부당한 시기의 일들을 더욱 파헤치고, 직면하려 한다. 우생보호법은 없어졌지만 그 피해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는 심적 공포를 딛고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어머니 사에코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다이의 의지는 결코 사적인 분노만은 아닐 것이다.
들리는 세상에서 아직 듣지 못한 것은 더 많은 농인과 코다, 농인 가족의 이야기다. 많은 코다들이 자신의 역사, 농인 부모의 고유한 이야기를 일부러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표현하기를 바란다. 이가라시 다이는 어머니 사에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사에코의 과거뿐만 아니라 자신의 뿌리,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또한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는 사람을 발견하면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겠다(187쪽)고 마음먹었다. 이것은 다이의 개인적인 목표이면서 강한 연대의 의지일 것이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를 통해 나 또한 부모님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 가정의 단순한 일대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차별받았던 소수자의 언어로서 존재할 것이다. 차별과 편견에서 기인한 부당한 것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