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코다코리아 X 사계절출판사『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릴레이 서평 ③

일본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의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출간을 맞아 코다코리아와 사계절출판사가 릴레이 서평을 올립니다.
세 번째 순서는 코다코리아 운영위원이자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공저자인 황지성 연구자입니다. “언어를 빼앗긴” 이들의 자취를 추적해나가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함께 읽어보아요!


*코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농인 부모의 자녀를 말합니다. 코다는 농인 부모로부터 수어와 농문화를 습득하고 청사회로부터 음성언어와 청문화를 접하며 자랍니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코다코리아는?

코다코리아는 코다의 모임이자 네트워크입니다. 코다의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돕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영케어러 코다의 어려움을 해소합니다.


코다코리아 X 사계절출판사『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릴레이 서평 ③
언어를 빼앗긴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
_황지성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일본의 코다가 농부모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집필한 자전적 에세이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가 2023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에서도 번역서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코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모든 코다와 농부모의 삶이 주류 사회에서 이제껏 쓰이지 않은, 숨겨져 있는 소중한 역사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이가라시 다이는 한국 근현대사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웃 나라 일본에 살고 있는 코다이자, 나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태생 장애인 부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가 내게는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러한 개인적 계기가 없다손 치더라도, 인문사회학 분야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생각된다. 책은 농인 부모, 특히 어머니의 삶을 통해 언어와 의사소통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또한 거시적인 법 정책 및 사회적 담론에 대한 아카이브만으로는 불가능한 특정 시기와 지역의 사회사(社會史)를 증언과 현지조사 등으로 구축된 개인과 가족의 삶의 기록을 통해 훌륭하게 보완해준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책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내가 독자로서 놓인 위치는 자연스럽게 ‘코다’와 ‘연구자’로서의 중층적인 나였다. 그리고 저자의 부모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1950-70년대 일본 사회 농문화와 농교육 현실을, 같은 시기 한국 사회 상황 그리고 내 부모님의 삶과 비교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시는 일본에서도 농문화나 농교육이 아직 확고한 기틀을 잡지 못한 시기였다. 하물며 ‘우생보호법’ 제정과 시행으로 대변되듯, 장애인 인구 일반이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고 하는 우생학 이데올로기와 정책이 맹위를 떨친 시기였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언어와 인지 발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유년기를 ‘언어 없이’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에서는 농교육에 헌신적인 교사와 연구자들 그리고 농문화의 소중한 토대로서 농학교가 19세기 말부터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왔으며, 저자의 어머니 역시 농학교를 터전 삼아 늦은 나이지만 인간 간의 의사소통,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 맺기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터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해방 이후 1970년대 무렵까지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국 사회 현실 속에서 농인의 삶은 어떠했는가? 나는 이미 한국 코다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에세이집 『우리는 코다입니다』 작업을 통해 1950년대생인 나의 농인 아버지의 삶과 한국 농인 교육의 현실을 복기해보고자 시도한 바 있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농학교에 입학했지만 학생들에게 매일 강제되는 노역 때문에 도망치듯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후 농사회와 영원히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청인인(동시에 지체장애를 가진) 내 어머니와 결혼을 하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삶으로 인해 책의 저자와 달리 나의 농인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은 수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가족은 물론 외부 세계 어느 누구와도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의 현실을 뼈저리게 받아들인 후 나는 아버지와 비슷한 세대 혹은 그보다 좀 더 앞선 세대의 농인 부모를 둔 코다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 부모 역시 대개 아버지와 매우 유사하게 교육의 부재와 그로 인한 고립,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어야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아버지는 물론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농인의 언어를 빼앗긴 역사, 소통될 수 없는 삶의 근원은 일본 사회 농인의 그것과 결이 전혀 달랐다. 


그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들리는 세계”에 속해 삶을 살아야 하는 코다가 성인이 되어 뒤늦게나마 부모의 “들리지 않는” 세계, 이야기되지 않은 역사를 복기하고 진실을 더듬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한일 코다는 공통적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들리지 않는” 이에게 “물어보는”는 행위는 모순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라는 책 제목이 묘하게 마음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많은 코다들이 그러하듯 나도 어쩌면 불가능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어가 아니라면 손짓과 표정으로 대신하면 된다. 직접 대화가 어렵다면 현재가 있기까지의 역사와 수많은 소수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언어를 빼앗긴” 이들의 자취를 추적해나가면 된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는 것은 불완전하고 외롭지만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