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손과 입으로 부르는 얼룩 송아지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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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코다코리아 대표)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는 일본으로 비행기 표를 사서 날아왔다. 엄마는 한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치 자그마한 손짓과 눈썹의 미세한 떨림에도 언어적 의미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아이를 침대에 눕혀 두고 엄지와 검지를 펴서 뿔 모양을 만든 후 머리 양쪽에 대고는 ‘소’라는 수어를 하며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닮았네”라고, 조금은 어딘가가 함축된 가사를 목소리를 내어 데프보이스로 부르고 고개와 어깨를 움직이며 율동 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렇게 수어를 배웠구나. 엄마는 매일같이 눈을 마주치며 손과 표정으로 말하는 법을 가르쳤겠구나.’


지금 당장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겠다는 맹렬한 기세로 울어대는 아이에게 졸린 눈을 비비며 젖을 물릴 때도 엄마를 떠올렸다.


‘이 모든 걸, 들리지 않는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출산 뒤 두달이 되었을 때 아기를 안고 한국에 갔다. 이제 막 발차기를 시작한 아이에게 나의 아빠는 조용히 다가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아기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며 “이렇게 손 펴봐” 하고 수어로 말했다. 새벽녘의 어스름 속에서 아이와 할아버지는 눈을 마주치며 대화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아기를 통해 바라보았다.


농인의 자녀인 코다이면서 동시에 신생아의 엄마가 되면서 유년시절을 떠올림과 동시에 웃기고 애달픈 순간도 마주해야 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울어 젖을 먹일 때였다. 아빠가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소파를 사야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키패드를 열어 다짜고짜 번호를 눌렀다. 전화 통역을 하라는 거였다. 나는 한손으로는 젖을 먹고 있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을 움직여 말했다.


“나 지금 젖 먹이고 있거든? 입에 젖꼭지를 물리고 젖을 생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리고 오래된 소파를 버리고 새 소파를 사는 건 나와 아기가 오기 때문이 아니었어? 그럼 우리가 오기 전에 샀어야지. 소파는 나중에 보러 가도 되잖아.”


그렇지만 아빠는 딸인 네가 있으면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전화로 물어볼 수 있고 그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으냐며 껄껄 웃었다. 아빠와 내가 손으로 말하는 사이에 아기는 입에 물린 젖꼭지가 빠졌다며 울었다. 나는 아이를 달랜 후 아빠가 건넨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러 말했다.


“저기요. 아빠가 소파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는데 오늘 영업하시나요?”


양손으로 수유를 해야 했기에 스피커폰으로 통화해야 했는데 음량을 미처 조절하지 못해 수화기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기는 시끄러웠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는 통역을 하다가 아빠를 보다가 아기를 살피다가 나의 처지를 한탄했다.


“아가, 많이 시끄럽지? 너랑 나는 들리니까 우리가 이해 좀 하자.”


부모님 댁에 가면 좀 편할 줄 알았다. 엄마가 밥 해주고 아빠가 청소하고 나는 아기에게 젖만 물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집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아이뿐이라는 걸 간과했다. 그러니까 아이의 울음소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아이를 재워두고 거실에서 밥을 먹다가도 아기가 울면 달려가야 했고, 왜 그러냐고 묻는 엄마에게 아이가 운다고 수어로 설명해야 했다. 카시트를 설치해야 해서 주차장에 다녀오겠으니 혹시라도 아이 깨면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돌아오니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아이와 거실에서 평온하게 티브이를 보고 있는 농인 부모를 보았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기야, 네가 들리니까 이해 좀 해라….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코다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경험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임신하기 전, 아이에게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인 농인 유모를 고용했다는 한국계 미국인 코다인 수경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생경하고 급진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낳아보니 알 것 같았다. 아이에게 어떤 말을 가르치고 어떤 문화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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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농인 할머니가 부르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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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아이의 이름을 정할 때였다. 엄마에게서는 한국 국적을, 아빠에게는 일본 국적을 물려받아 복수국적자로 자라게 될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한일커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도 종종 쓰는 하나, 하루, 유나, 미나, 준 같은 이름들로 말이다. 나의 아이의 경우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조부모가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라는 거였다. 즉, 아이 이름은 우리 엄마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이어야 했다.


나의 이름은 보라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을까.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아오라는 숙제를 하며 부모에게 이름에 담긴 이유를 물었다.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아빠는 껄껄 웃으며 “기억 없다”고 손으로 말했다. 나는 자식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잊는 부모가 어디 있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내 이름이 왜 보라인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 농인 부모의 자녀 이름이 보는 감각과 연결된 ‘보라’가 된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여러 방식으로 부를 테였다. 아기의 눈을 쳐다보며 여기 보라고 손짓한 다음 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인 수어 이름으로 부르고, 아기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데프보이스로 소리를 내어 호명할 테였다.


수어의 세계에는 수어 이름(얼굴 이름)이 있다. 예를 들어 ‘보라’라는 이름은 한국 문자언어의 체계에서 만들어진 기호다. 이를 손과 손가락으로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표기하는 지문자로 변환하여 표기할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 이름에는 받침이 없어 다른 이름과 비교해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음에도 ‘ㅂ’을 쓰고 ‘ㅗ’를 쓰고 ‘ㄹ’을 쓰고 ‘ㅏ’를 써야 한다. 언어의 경제성에 부합하지 않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수어 이름이 존재한다. 각 나라 혹은 문화권마다 이름을 짓는 방식이 다른데, 한국수어의 경우 외양적 특징과 성격을 부각한 손짓을 한 후 여성 혹은 남성을 일컫는 기호를 합친다. 최근에는 성별을 이분법적으로만 나눌 수 없다는 문제 제기에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 중성적인 이름도 많이 생겼다.


수어 이름은 농사회에 진입했을 때 수어의 원어민인 농인들이 특징을 찾아 지어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20대 초반에서야 수어 이름을 가졌는데, 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아니, 30대 중반이 된 내 동생, 그러니까 나처럼 농인의 자녀인 동생에게도 수어 이름이 없는데 태아의 것을 벌써 짓는다고요? 나는 이름 없이 ‘아들’ 혹은 ‘동생’이라고만 호명되는 광희를 떠올리며 불쌍하고 웃기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수어 이름은 농인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나는 문자언어로 된 이름을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속하게 될 여러 문화 속에서 통용될 수 있고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짓고 싶었다. 고민 끝에 추려진 두 개의 이름을 엄마에게 제안했다. 엄마는 손으로 써본 후에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발음했다.
“시, 우!”
“서, 우!”


자음 시옷은 농인인 엄마가 발음하기에 다소 어려웠다. ‘시’는 입을 다물고 입술을 열어 이빨 사이로 공기를 내보내며 입술 근처에서 소리를 내면 되었지만 엄마는 자꾸만 목구멍 근처에서 소리를 냈다. ‘우’ 역시 입술을 동그랗게 하고 소리를 목구멍으로부터 입술 바깥으로 힘차게 내보내며 짧게 발음하면 되었지만 엄마는 높은 톤으로 목구멍 뒤에서 소리를 냈다. 열 번만 부르면 목이 쉴 것 같았다. ‘서’ 발음은 ‘시’보다는 나았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졸지에 발음 연습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당신은 듣지 못하는 이름을 목에 피가 나게 불러보는 상황이라니.


엄마는 고민 끝에 시우가 좋다고 했다. 받침이 없어 발음하기도 어렵지 않고 멋지다고 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누가 들어도 ‘시우’를 부르는 것 같았다. 수어를 모어로 하는 농인에게 문자언어로 된 이름을 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은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아이를 부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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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기가 있으니 우생보호법 소송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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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코다코리아 대표)


5개월 된 아이와 함께 일본 후쿠오카 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옛 우생보호법에 따른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 아사쿠라 노리코와 일본 정부 간의 화해 기일이 열리는 날이었다. 유아차를 밀고 들어서니 사람들이 출산했느냐며 말을 건넸다. 소송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농인이라 거기 있으면 꼭 내 농인 부모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농인들이 아기를 보다가 나를 보고 수어로 인사했다. 지원단 대표가 말했다. “아기가 있으니 이제야 우생보호법 소송답네!”


재판이 시작되었고 아기는 칭얼대다 잠이 들었다. 5년간의 소송이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화해의 주된 내용은 배상금을 조정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내용도 있었다. 판사는 피고 쪽 변호사를 불러 재판 내내 원고를 과도하게 심문한 점에 대해 사과할 것을 명했다. 변호사는 뒤늦게 소송을 제기한 점에 대해 지나치게 물은 것과 불임수술의 피해자가 사망했고 불임수술 시행 병원이 폐업했음에도 증거를 가져오라고 과도하게 요구했던 점을 사과했다. 노리코는 화해를 받아들였다.


아기와 함께 보고 들었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행해진 가해와 폭력의 역사를. 그리고 이를 당사자 운동으로 발전시켜 우생사상이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제로 확장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 농인의 역사이자 농인의 자녀인 코다(CODA)의 역사, 농인의 손자인 고다(GODA)의 역사이기도 한 이것을 아기가 기억해주길 바랐다.


재판 후 나는 노리코에게 물었다. 여전히 불임수술을 받은 사실이 수치스러우냐고. 그는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고, 그런 감정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노리코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농인에 대한 차별과 불의는 일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음성언어 중심 사회라면 어디서나 비슷하게 벌어진다. 핀란드에서는 1929년부터 1969년까지 우생학적 이념에 기반한 결혼법이 시행되었고 선천적으로 농인을 낳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이들 간의 결혼이 금지되었다.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2019년 6월, 핀란드 정부는 농인과 수어 사용 공동체를 위한 화해 과정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수어 사용 공동체와 정부 간의 공식적인 화해를 시도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다.


정부는 핀란드 역사에서 농인에게 어떤 종류의 불의가 자행되었는지, 이러한 침해는 농인과 코다를 비롯한 수어 사용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보고서는 결혼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청인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의 우월성에 입각한 청능주의(Audism·오디즘)와 수어 대신 음성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구화주의가 농인과 수어 사용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고, 여전히 그렇다고 쓴다. 이와 같은 차별과 불의의 경험은 너무나 깊고 포괄적이어서 사회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에이블리즘(Ableism, 비장애인 중심주의)을 갖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이 일을 할 수 없어’ ‘통역사가 없으니까 불가능해’ ‘농인이라 안 돼’와 같은 내면화한 억압을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 옛 우생보호법 소송은 끝났지만 당사자들은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우생사상과 그로 인한 차별·편견을 해소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 이러한 법이 만들어지고 지속될 수 있었는지, 피해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등의 전수조사와 진상 규명을 하고, 나아가 장애가 있는 당사자가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마련하고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인식 개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최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출산하자마자 아이를 빼앗기고 강제로 피임 시술을 받은 김애정씨의 사례를 비롯하여 장애여성 9명이 집단 수용 시설에서 강제불임·피임 시술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2025년 12월, 강제불임수술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성·재생산 부정의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우생사상에 의한 차별과 불의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지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방조하고 묵인해왔을까. (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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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억압 (이길보라)

9f11687d22abb.png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코다코리아 대표)


배가 점점 불러왔지만 임신했다는 사실을 나의 영화 주인공인 아사쿠라 노리코(가명)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본 옛 우생보호법으로 인해 재생산의 권리를 빼앗겨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그에게 내가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면 그는 어떤 기분이 될까. 슬프거나 부럽거나 미운 마음이 든다면 어쩌지…. 나의 파트너는 촬영 전에 미리 만나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것을 권했다. 그가 복잡한 마음이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민이 되었다. 누구나 재생산의 권리를 가진다. 나도 그렇다. 나는 노리코와 같은 청각장애인에게서 태어났다. 그가 경험한 국가폭력과 불의는 나의 부모를 비껴갔고 운이 좋게도 나는 태어날 수 있었다. 내가 임신했던 지난해 우생보호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청각장애가 대물림될 수 있으니 추가 상담을 받으라”는 우려 섞인 조언을 여전히 듣고, 엽산을 추가 복용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고민 끝에 당분간 임신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소송의 변론기일 일정이 잡혔다. 누군가 불러온 내 배를 보고 임신했느냐고 묻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두꺼운 옷을 입고 촬영 장비를 챙겼다. 노리코가 주인공인 재판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복잡했다. 촬영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몇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만삭이 되어 더 이상 임신 사실을 숨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나는 괜히 심각해지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촬영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잘 지냈냐며 인사한 후 그가 알아채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새끼손가락을 펴고 ‘여자’라는 수어를 한 후 오른손 검지로 봉긋한 배의 형상을 그렸다. 노리코는 그제야 나의 배를 쳐다봤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몰랐어, 축하해!”

그는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말했다. 노리코의 큰 동작에 옆에 있던 농인이 나의 배를 쳐다봤다. 그래서 살이 찐 것이냐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출산 직전 함께 찾은 신사에서 노리코는 나의 순산을 빌었다. 또한 출산예정일 다음날에 열릴, 강제 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의 최종 판결에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두 손을 모았다.

배 속의 아기는 예정보다 일찍 세상에 나왔다. 최종 판결이 내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기를 바랐는데 정반대였다. 노리코에게 소식을 알리고 싶었지만 판결을 앞두고 심란할 텐데 연락을 하기가 민망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출산했어요. 최종 판결에는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기를 잘 키우고 있을게요. 곧 보러 오세요!

2024년 5월30일, 일본 후쿠오카 지방재판소는 옛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 불임수술이 위헌이며 불법 행위로부터 20년이 지나면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없게 되는 제척기간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국가는 1600만엔(1억5천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해 6월12일, 피고 국가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노리코는 승소했으니 이제 아기를 보고 싶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수고했다며 축하금을 건넸다. 자신은 출산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 아, 아, 하고 말하며 농인 특유의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다가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이를 내려두고 수어로 대화를 하는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반응했지만 그는 계속 내 눈을 보고 손으로 말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기를 가리켰다.

“얘, 울어요.”

그제야 그는 아이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꼭 나를 키웠던 나의 엄마 같았다.

2024년 7월3일, 일본 대법원은 국가가 옛 우생보호법에 의해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이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달 17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도쿄 총리관저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다. 이제 막 두달이 지난 아기를 품에 안고 기사 사진을 보았다. 고개 숙인 총리 앞에 아사쿠라 노리코가 서 있었다. (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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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어쩌면 내 이야기, 우생보호법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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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코다코리아 대표)


아이를 갖기 전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의 몸’을 기획하고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농인의 자녀인 코다의 시선으로 농인, 코다, 수어 사용 공동체 내에서 그동안 말해지지 않았던 여성의 몸, 정상성, 재생산권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의 영화다. 나는 일본 옛 우생보호법의 피해자인 아사쿠라 노리코(가명)의 여정을 좇고 있다.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막는다”는 명목 아래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8만4천여건의 강제불임이나 임신중지 수술이 시행되었다. 노리코는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임 수술을 받았던 피해당사자의 아내다. 남편이 결혼하기 일주일 전에 회사 사장과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아무런 설명 없이 수술을 받았고, 나중에서야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손으로 말했다. 그의 수어를 보면서 나의 엄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농인이기도 하고 일본 수어가 한국 수어와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볼 때마다 부러웠어. 나도 둘을 낳아 기르고 싶었어. 너는 좋겠다. 젊고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까.”


손을 움직이며 동시에 데프 보이스(Deaf Voice·농인의 목소리)를 내는 노리코를 보며 기시감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부모에게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보라, 네 할머니가 그랬어. 장애인은 애를 하나만 낳아도 충분하다고. 대를 이어야 하니 아들을 낳으라고. 뱃속에 있는 딸, 그러니까 너지. 너를 지우고 아들 하나만 낳으라고.”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맞닿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노리코는 나의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해서 물었다. 옛 우생보호법, 그거 없어진 거 아니냐고. 옆 나라 일본에 있었던 이상한 법 아니냐고, 한국에는 그런 거 없지 않으냐고. 그러니까 여기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1940년 일본이 국민우생법(우생보호법의 구법)을 선포했을 때 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1973년 한국에서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일본 우생보호법의 영향을 받아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낙태의 허용 조건으로 명시했다. 장애인에 대해 선택적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조항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며 이는 한센병 환자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제불임 시술의 근거가 되어왔다.


우생보호법은 사라졌지만 우생사상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와 맞닿게 된 것은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부터다. 이제부터 달라질 나의 삶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기형아선별검사’와 같은, 장애아를 선별하여 제거해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면 하루라도 빨리 임신을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일본의 병원에서는 한국에서는 필수적으로 받는 그러한 검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원한다면 받을 수 있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고 했다. 장애아를 출산할 수 있는 확률을 줄이기보다 출생 이후에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어떤 아이를 낳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사회적으로 분분하다. 2013년 5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산전검사 오진으로 인해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부모가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잘못된 삶’ 소송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이 생명을 선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송의 원고를 비롯해 생명의 선택에 직면한 다양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논픽션 ‘선택할 수 없었던 생명’(국내 미출간)의 작가 가와이 가오리는 산전 진단과 유전자 검사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우리는 검사 결과에 따라 쉽게 선택을 내리지만 “우리는 선택하는 데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고 쓴다.


한국과 일본의 산부인과를 오가며 생각했다. 우생사상은 끝나지 않았다고. 옛 우생보호법을 만들고 지속시켰던 그 사상은 나의 몸과 깊숙이 엉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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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들리지 않는 아이라도 괜찮을 것 같아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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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코다코리아 대표)


산부인과 상담실에 들어서자 담당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청각장애가 유전될 확률이 있는 것 같은데요. 산전검사에서 태아에게 청각장애가 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어요. 원하신다면 의사 선생님과 상담 예약을 잡아드릴게요.”

생각해 보았다,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날 확률. 그런데 그건 좀 괜찮을 것 같았다. 다운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신경관결손증후군과 같은 장애는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장애였다. 잘 모르겠어서 두려웠다. 그런데 아이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면? 그럼 수어를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닌가. 소리를 내어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손을 올려 아이를 부르면 되지 않나. 눈을 마주치고 수어로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대감이 생겼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인 나는 농인 부모에게서 나고 자랐다. 수어를 사용하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농’(Deafness)은 불쌍한 것도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걸 배웠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아이에 대한 두려움은 경험해 보지 않았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장애인을 만나 보지 않은 이들이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처럼.

그 무렵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코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애아를 가질 확률이 있다면 낳고 싶지 않다고.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아이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면 어떨 것 같으냐고.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하나가 말했다.

“농인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아이와 수어로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농인과 어떻게 사는지 잘 아니까요.”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뱃속의 아기가 농인이면 좋겠는지 청인이면 좋겠는지. 엄마는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농인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자신과 수어로 소통할 수 있으니 좋다고 말이다. 엄마는 농인으로 살아오면서 농을 장애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래도 어떤 아이든지 좋다고 덧붙였다.

나는 청인 부모에게서 청인으로 나고 자란 파트너에게 물었다. “만약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는 문제 될 것 하나도 없다는 듯 맑고 힘차게 대답했다. “당연히 낳아야지. 우리 아이잖아.”

갑자기 화가 났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부터 들어온 ‘기형아 검사’를 둘러싼 우려와 걱정, 불안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나는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야, 네가 장애와 함께 사는 삶을 알아? 넌 장애인과 살아본 적 없잖아. 그게 어떤 경험을 수반하는지 너는 한번도 겪어본 적 없잖아!”

낳기로 했으니 어떤 존재든지 환영한다고 두 팔 벌려 환대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 안의 양가적인 마음과 싸웠다.

분만 직후에는 간단한 검사가 시행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심장은 잘 뛰는지, 두 팔과 두 발이 있는지, 손가락과 발가락은 다섯개인지, 눈 코 입 다 달려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우렁차게 울어대는 아이 옆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하고 건강하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산사는 며칠 뒤 청력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아이가 들을 수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으로, 청각신호를 보내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반응을 확인하는 검사다.

종종 생각한다. 만약 산전검사에서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더 알지 않는 것을 선택했을까. 혹은 조금이라도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검사를 받았을까. 그 검사에서도 확률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여리고 작은 얼굴에 주렁주렁 장비가 달렸다. 조산사는 모니터를 연결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곧 끝날 거라고 했다. 나는 걱정되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했다. 숨을 죽였다. 아이는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다가도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태평하게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산사는 차트에 검사 결과를 적으며 말했다.

“청각에 이상이 없네요. 건강합니다.”

웃어야 할지 아쉬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아기가 소리를 들을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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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어떤 아이는 낳고, 어떤 아이는 낳지 않고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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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코다코리아 대표)


임신을 확인하고 보건소를 찾았다. 병력과 가족력 등의 건강 상태를 적어 제출했다. 나는 양쪽 부모와 작은 아빠, 사촌 동생에게 청각장애가 있다고 썼다. 담당자는 말했다.
“걱정이 많이 되시겠네요. 보통 임산부는 이 정도의 엽산을 먹는데요. 그거보다 더 복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의료기관에서는 주수별로 받아야 하는 검사의 종류를 설명했다. 기초 혈액검사, 통합 선별 검사, 목덜미 투명대 검사, 엔아이피티(NIPT) 검사, 양수 검사, 쿼드 검사 등. 뭐가 뭔지 파악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기형아 검사’라고도 불리는 검사를 앞두고 이런 글을 읽었다. “결과를 확인하니 유전자 이상 수치가 높게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노산이라 기형아 출산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해도 추가로 검사를 받을 생각이다.” 그즈음이었을까. 발달장애인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을 시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말미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장애아를 왜 낳았어.”

사상 최저의 출생률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의 검사를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지 않기를 권하는 사회와 임신하기를 원하지만 장애아는 안 된다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생학적이고 차별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임신하기 전에는 말이다.

당연히 다른 몸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농인의 자녀로 태어나 손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이 특별한 것도 불쌍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배제하는지 경험한 내가 또다시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건 어떤 모습의 돌봄일까. 새로운 돌봄과 그를 향한 차별과의 싸움을 나는 기꺼이 환대할 수 있을까.

일본 산부인과에서는 위와 같은 검사를 ‘출생 전 유전학 검사’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주수에 따라 이런 검사를 받는다고 하자 여기서는 혈액검사만 하고 다른 검사는 필수로 권하지 않으며 원할 경우 추가 비용이 든다고 했다. 한국과 비교해 훨씬 비쌌다. 한 의사는 과도한 산전검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불안만 가중할 뿐 달라질 건 없잖아요. 뱃속에 있는 아기를 상대로 장애를 고치는 수술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고요. 장애아를 가질 확률이 높은 걸 알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낳지 않을 건가요?”

일본은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우생보호법을 시행했다. 그로 인해 장애인, 부랑아, 한센병자 등이 강제 불임과 낙태 수술을 받았고 현재 드러난 피해자만 8만4천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에 일본 장애인운동은 산전검사와 그 결과에 따른 선별적 낙태는 장애인 차별이며 개인의 자기 결정이라는 형태를 취한 우생사상의 실천이라고 비판했다. 의료 관계자, 장애인·여성 단체는 산전검사를 둘러싼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여러 종류의 산전검사가 개발되고 보급되었고 이는 생명을 선별하는 것이 옳은지,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질문은 덮어놨다. 비장애·장애 여성들의 연대와 저항 끝에 지난해 7월 일본 대법원은 옛 우생보호법이 개인의 존엄과 인격 존중 정신에 현저하게 반하는 위헌적 법률이며 이에 따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총리는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다.

일본 리쓰메이칸대 생존학연구소 연구원 게이코 도시미츠는 산전검사를 받을지 말지, 태아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임신을 계속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은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장애나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고통과 즐거움, 묘미를 아는 이들을 비롯해 여성들의 생각을 헤아리면서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 임신 초기에 필수로 진행하는 통합선별 검사까지만 받기로 했다. 내 안의 우생사상을 마주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만약 태아가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두려운 걸까? 그렇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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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나무] 수어 설교와 음성 통역 예배 이야기 (조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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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혜(주안수어교회 통역사, 코다코리아 회원)

 

저는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입니다. 코다는 부모 중 한 명 또는 양쪽 모두가 농인 혹은 청각장애인이거나, 보호자가 농인 혹은 청각장애인인 가정에서 양육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부모님 두 분 모두가 농인이십니다.

저는 모태 신앙인으로, 부모님은 46년간 한 농인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따라 농인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렸고, 청인 선생님으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으며 신앙심을 키워 왔습니다. 이후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교회를 옮겨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은 점차 식어갔고, 어느새 제가 형식적인 예배만을 드리는 성도가 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결혼 후에는 자녀를 데리고 계속해서 교회에 출석하였으나, 여전히 마음은 뜨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교회 내에서 정치적 욕심과 권력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행동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신앙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고, 결국 어머니가 출석하시는 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주안수어교회로, 농인 목사님이 수어로 설교를 하시고, 성도들 역시 대부분이 농인이며, 청인을 위한 음성 통역(수어→음성)이 제공되는 교회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농인 교회인데 왜 통역이 필요한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농인이 중심이 된 교회에 굳이 음성 통역이 필요한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우리 교회처럼 농인이 주축이 되어 수어로 예배가 진행되는 공동체에는 코다, 농인의 가족, 혹은 농인 사역에 관심을 가진 일반 청인 성도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은 수어 실력이 능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신앙과 관련된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언어 장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수어 예배를 음성으로 실시간 통역해 주는 ‘음성 통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어가 시각 언어로서 풍부한 표현력을 지녔다 해도, 그것을 정확히 음성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없으면 청인은 예배 중 나누어지는 핵심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는 농인 목사님이 직접 설교를 하시기 때문에, 설교의 핵심 메시지와 영적 감동을 청인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수어를 음성으로 바꾸는 통역이 필요합니다.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설교의 흐름, 감정, 강조점까지 섬세하게 옮기는 통역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음성 통역사’입니다. 저 역시 그 사역에 참여하며 통역의 중요성과 무게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어는 저의 모어이고 편한 언어이지만, 그 내용을 음성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수어를 보면 즉시 이해가 되지만, 그걸 입으로 표현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스스로 수어에 익숙하다고 자부했지만, 성경에 대한 지식과 신학적 어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교만과 자만심을 인식하고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음성 통역을 하면서 혹여나 설교를 잘못 전달하면 어떡하나 염려하던 어느 날, 농인 전도사님께 상담을 요청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이 보여 주신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애굽기 4:10-12)


이 말씀은 저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주님이 제 연약함을 아시고 함께하시며 입술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다시금 통역 사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통역은 어렵지만, 말씀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수어 예배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청인을 배려해 통역을 제공하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한 말씀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어로 설교를 한다고요?”라고 놀랍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농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훌륭한 농인 목회자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농인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청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분들도 계십니다. 다만 그 능력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통역자가 부족하기에, 청인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접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우리 교회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고요하지만 고요하지 않은, 시각 언어로 드려지는 살아 있는 예배. 농인과 청인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이 공동체가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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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다큐S프라임] 수어 마음을 잇다


하나의 완벽한 언어체계로 구현돼 한국어와 동등한 지위를 지닌 한국수화언어, 수어. 더 이상 배려의 수단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로 수어 사용이 일상화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수어는 사용자들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완전한 언어임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인데. 우리는 수어와 이를 모국어로 하는 농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사용자들의 삶을 담아내는 수어를 통해 진짜 소통에 대해 생각해 본다. 
YTN사이언스 배민하 minha1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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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나무] 한국수어, 법적 기반을 넘어 사회적 존중으로 (송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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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섭 (목사,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2016년 2월 3일, 대한민국은 의미 있는 순간을 맞이했다. “한국수화언어법”(2016.2.3. 법률 제13978호)이 제정되면서 한국수어가 대한민국 농인(청각장애인)의 공용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한국수어가 단순히 장애인 복지의 수단이 아니라 독립적인 언어로서 존중받아야 함을 법적으로 확인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법적 인정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청인 중심의 음성 언어 체계가 지배적이며, 수어는 법적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 인정된 한국수어가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는 법적 제도화를 뛰어넘어 한국수어가 존중받고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한국수어 사용의 현실과 문제점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것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농인들이 정보 접근, 교육, 고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방송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며 모든 뉴스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긴급 재난 상황에서도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위협받고 있다. 예를 들어, 12‧3 계엄령 선포 당시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 수어 통역 및 자막 지원이 부재하여 농인들이 실시간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교육의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일부 대학교에서 수어 관련 강좌가 개설되어 있지만, 초·중·고등 교육 과정에서는 수어 교육이 정규 과목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농인뿐만 아니라 청인들도 수어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여, 사회적 소통의 단절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한국수어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인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구할 때 불이익을 받고 있다. 청각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수어 통역 환경이 미비한 기업이 많아 농인들이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채용과 업무 과정에서 차별을 겪는 경우도 빈번하다.

 

사회적 존중을 위한 대안

법적 기반을 넘어, 한국수어가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공공 기관과 필수 서비스에서 수어 지원을 의무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병원, 법원, 경찰서 등에서 필수적으로 수어 통역을 제공하도록 법적 기준을 강화해야 하며, 통역사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여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또한, 핀란드처럼 정부 차원에서 수어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교육 과정에서 한국수어를 필수 과목으로 포함해야 한다. 한국수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한국 사회 안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언어이자 소중한 역사와 문화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따라서 초등학교부터 기본적인 수어 교육을 의무화하고, 중・고등학교에서도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여 청인들도 자연스럽게 수어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어를 단순히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수어의 역사와 농문화7)에 대한 교육도 병행하여, 수어가 단순한 보조적 언어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사, 공무원, 의료진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수어 교육을 의무화함으로써, 수어 사용을 특정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농인의 접근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한국수어가 우리의 문화로 자리 잡고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수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 현재 뉴스에서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수어 통역을 예능, 드라마, 광고 등으로 확대하고, 농인 배우와 방송인 그리고 농인 유튜버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CODA, 2021)가 작품상을 수상하며 수어와 농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처럼, 한국에서도 먼저 대중문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넷째, 기술을 활용한 수어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AI 수어 번역기를 개발하고, 농인의 자연스러운 수어 데이터를 수집·연구하여 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현재 AI 기반 자동 번역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표정과 몸짓을 포함하는 자연스러운 수어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와 데이터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어와 한국수어, 양대 공용어로 인식해야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한국어만을 대한민국의 유일한 공용어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모두 대한민국의 공용어이며,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한국수화언어법” 제1조). 단순히 법적인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두 언어가 동등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사회적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별한 배려’가 아닌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마치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배우듯이 수어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청인 중심의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농인의 언어(수어)와 농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언어 환경을 향해

 한국수어는 단순히 장애인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화이자, 농인의 정체성과 직결된 삶의 언어다. 법적 제도화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사회적 존중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를 위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제는 소통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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