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코다 프라이드 CODA Pride

미국에 살고 있는 코다가 만든 영상인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농사회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 없이 오롯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 한국의 코다들도 움츠려들 것이 아니라 더 멋지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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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의 자부심 (Coda Pride)



지금 이것은 소리 없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화면은 농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로지 시각적인 세상이죠. 소음도 없고, 목소리도 없고, 소리도 없습니다. 


제 이름은 레이첼 베어이고, 열 네살입니다. 저는 남동생 제이콥과 여동생 사라, 그리고 농인인 부모님(줄리와 조이)과 함께 삽니다. 저와 제 형제들은 코다입니다. 코다는 농인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코다로서 저와 제이콥, 사라는 많은 농인들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농인 사회에 속해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샌프란스시코 베이 지역에서는 (샌프란시스코 만안지역) 농사회가 매우 큽니다. 그래서 코다 사회도 또한 크지요. 


코다 자부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집니다. 하프 앤 하프의 마이클 벨레즈와 쉐리 힉스는 수화로 노래하는 재능을 통해서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마이클을 한번 만나 볼까요? 마이클이 진짜 코다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준다고 합니다.


(마이클) 안녕하세요, 저는 마이클 벨레즈입니다. 저는 코다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많은 사람들이 코다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코다는 자랑스럽고, 개성있고, 독특한 공동체죠. 여러분에게 코다 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는 코다로 태어났고, 미국 수화를 사용하면서 컸습니다. 미국수화는 제게 제 1의 언어이자 모국어였습니다. 영어가 두 번째 언어였죠. 많은 코다들이 이중언어를 사용하며 성장합니다. 코다들은 일상에서 의사소통의 도구로 영어와 수화 둘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테)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제게 수화를 가르쳐주셔야 했죠.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수화를 배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수화는 영어로 말하기를 배우는 것 대신에 먼저 배운 첫 번째 언어이니까요.


(잭슨) 들리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방식처럼 저도 자연스럽게 수화를 배우면서 자랐어요.


(다니엘) 어떻게 수화를 배웠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저는 그저 두 개의 언어를 하면서 자란 것이 기억날 뿐이에요. “나는 수화를 알아, 나는 영어를 알아” 이렇게 두 언어를 구별해서 인지했던 순간이 특별히 없었어요. 저는 단지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자랐어요.


(단테) 저는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알아요. 수화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요. 농인들하고 대화할 때도 편안함을 느껴요. 왜냐하면, 저는 영어, 수화 둘 다 아니깐요.


(마이클) 저는 개인적으로 영어와 수화 중에서 수화를 쓰는 것을 더 선호해요. 그 이유는, 수화가 제 모국어이기 때문이죠. 영어보다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익혔던 언어이니까요. 수화는 사용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언어이고, 영어보다 더 잘 한다고 느끼는 언어이고, 영어를 사용했을 때 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제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단테) 영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수화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아요. 왜냐면 수화는 제가 가장 먼저 배운 언어고, 제가 더 편안하게 느끼는 언어예요.


(자넷) 영어는 제가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수화는 직업이 수화 통역사인만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죠. 둘 중에 어떤 것을 더 선호한다든지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영어와 수화 두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하는 것을 즐겨요. 딱 반반이죠.


(자도르) 흠, 영어를 사용한다든가 수화를 사용한다든가 하는 것은 상황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청인 친구들과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영어를 사용하겠죠?


(제시카) 오빠들하고 있을 때는 말로 하죠. 오빠들은 다 청인들이예요. 그러다 아빠가 방안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수화를 사용하기 시작해요. 어떤 언어를 더 선호한다의 문제가 아니예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한 상황이냐 하는 것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죠.


(잭슨) 제 친구들 중 많은 친구들이 들을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 친구들은 수화를 몰라요. 하지만, 제 생각에 저는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을 표현하기에 더 좋은 방식이랄까요?


(마이클) 코다에게 수화는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아왔던 것이죠. 하지만 농인들을 만나 본적도 없는 청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농문화가 익숙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수화가 친숙하지도 않죠. 그러니 그들에게는 수화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청인들이 농인을 처음 만났을 때, 다양한 반응들이 나옵니다.


(자도르) 제 부모님이 농인인 것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들이 있어요. “TV는 어떻게 봐?”, “운전은 어떻게 해?” 등과 같은


(제시카) (부모님이 농인인 것을 주변인들이 알게 될 때) 보통 둘 중 하나예요. “오, 미안”이라고 하거나, 엄청난 질문을 퍼붓거나


(자넷) “점자를 읽을 수 있어?”, “운전은 하실 수 있고?”와 같은 질문들. 이런 질문들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죠. 이런 질문들은 저희 부모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단지 수화나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제시카)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이 농인이라는 사실을 뭔가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 미안!”이라고 말하곤 하죠. 그리고 나선 이 얘기를 다시 언급하는 것을 꺼려해요.


(단테)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하곤 해요 (아이의 표정처럼)


(미키타) 사람들은 놀란듯이 반응해요. 사람들은 놀라하죠. 왜냐하면 내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리지 않으면 많은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마이클) 농인에 대한 많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많은 청인들이 들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농인이 배울 수도 없고, 다른 사람처럼 의사소통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 이것이 배움과 의사소통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 당신을 한정 짓지 않아요. 농인들은 들리지 않는 것뿐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즉 고요한 상태는 아니거든요.


(자도르) 저는 저희 부모님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 두분 모두 대학을 나오셨고, 좋은 교육을 받으셨고


(다니엘) 저희 부모님은 두분 다 매우 강한 성격을 갖고 계세요.


(미키타) 들리지 않는 것이 바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수학을 매우 잘하시고, 저에게도 수학을 가르쳐 주세요.


(제시카) 아빠는 똑똑해요. 대학에 다니셨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세요. 엄마도 교육을 받으셨고, 지금은 학대 받는 여성들을 돕는 비영리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으세요. 엄마는 미국 전역의 수백 명의 학대 받는 농인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저희 부모님은 그들이 농인이라고 해서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이에요.


(마이클) 저에게 코다가 되는 것은 부족의 한 부분이 되는 것과 같아요. 문화나 언어가 풍부한 부족이면서, 제 영혼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부족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가 영원히 속할 부족이기도 합니다. 제가 결코 놓아줄 수 없는 부족이기도 하고요. 


(잭슨) 저는 들리는 사회와 들리지 않는 사회 두 개의 다른 문화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꽤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넷) 코다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제가 부모님을 존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모두 농인인 이모, 삼촌, 사촌,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물론이고요. 코다라는 것은 제가 제 가족들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부모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자도르) 코다라는 것은 제가 듣는 세계뿐만 아니라 들리지 않는 세상과도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자넷) 코다라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 코다가 많지는 않죠. 코다는 매우 작은 사회입니다. 농사회는 굉장히 긴밀하게 맺어져 있는 사회입니다. 제 생각에 코다 역시 그런 특성이 있는, 굳게 단결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대관계는 우리들의 부모님이 농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그래서, 전 제가 코다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마이클) 물론 코다들은 그들의 부모님과 겪은 재미있고도 독특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잭슨) 가끔 새아빠가 라디오를 켜시고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추시곤 하는데, 어느 날인가는 아빠가 라디오를 틀었는데 잡음만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아빠는 거기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셨죠. 


(자넷) 농부모와 농사회는 매우 가깝고 긴밀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행사 같은 곳에서 만나면 그들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아요. ‘농인들의 작별인사’라고도 부르는데, 저희 부모님은 “알았어. 5분만 있다가 갈거야.”라고 하고선 20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어요. 그리고 나선 다시 말씀하시죠. “그래, 집에 곧 갈거야. 딱 1분만 더” 그럼 저는 “아, 엄마 진짜~”, “알았다니깐, 1분만 더, 1분만 더”


(다니엘) 일반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통역할 때 일어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제게 뭔가 통역하길 원하는데, 통역하기에는 이상할 때? 예를 들면, 가끔 엄마가 주문한 음식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 강하게 되돌려 보내고 싶어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행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럴 때 저는 “엄마가 이것과는 조금 다른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정도로 모호하게, 순화해서 이야기해요. 그때 웨이터들은 분명히 엄마가 주문한 음식에 대해 굉장히 불만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겠죠. 그래도 저는 “음식을 다시 해주시면 안될까요?” 정도로 이야기해요. 옆에 굉장히 격노한 엄마가 있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다른 것으로 바꿔주세요~”라고 부드럽게 이야기하죠. 웨이터들은 뭔가 혼란스러워하지만, 어쩌겠어요. 


(마이클) 앞으로도 계속 농문화와 코다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항상 소중히 여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