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엄마아빠농인의날 기념 온라인 북토크〈우리는 코다입니다〉요약본 및 영상


엄마아빠농인의날 기념 책『우리는 코다입니다』온라인 북토크

매년 4월 마지막 일요일은 '엄마아빠농인의날'입니다. 코다의 날이지요.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코다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쓴 저자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에게 들어봅니다. 


일시 : 2022.04.19. 19시 30분~21시 30분
장소 : 줌(ZOOM)을 활용한 실시간 비대면
대상 : 코다코리아 정기후원회원 (비회원 15,000원)

주최 : 코다코리아
수어통역, 문자통역 제공

 


기록 영상


사회자: 손은선
연사: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수어통역: 코다코리아 이한나, 조미혜
음성통역: 코다코리아 한민지
문자통역: AUD 안현정
진행: 코다코리아 장현정



행사 기록


2022년 4월 19일 진행된 온라인 북토크콘서트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현장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코다의 깊은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손은선: 2022년 우리는 코다입니다 책 북토크 콘서트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환영합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책을 쓴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세 분이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이고, 책을 함께 쓴 수경 이삭슨도 소개드립니다. 미국인이고 수어통역사이며 수어통역학을 강의하는 교수님입니다. 자리에 계신 세 분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길보라: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는 이길보라입니다.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굳게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듭니다.
오랜만에 우리는 코다입니다 같이 책 쓴 멤버들과 함께 북 콘서트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최근에 같이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코다코리아 멤버들과 이 행사를 같이 준비하고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현화: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로 있는 이현화라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수어정책을 만들고 수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수어통역사이기도 합니다.


황지성: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장애, 여성, 퀴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손은선: 우리는 코다입니다 책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코다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책이었고, 한국사회 전반에 좋은 영향력을 많이 끼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선보였습니다. 각종 미디어와 언론 등에서도 주목하면서 코다 뿐만 아니라 농인, 수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늘었습니다. 
책이 출간된 이후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요, 그 동안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수어통역이 많이 노출되면서 수어에 대한 관심이 늘었습니다. ‘덕분에 챌린지’같은 것도 있었구요. 세 분이 책에서 못 다한 이야기나, 책을 쓴 이후의 변화 등이 있었을까요?


이길보라: 이런 변화들은 우리 모두가 같이 만들어온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0년 전쯤에 코다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는데,  코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코다들이 모여서 활동을 해 오고 이 책을 쓰면서 제 경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코다들의 경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온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항상 급변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 코다가 한국 사회에 많이 알려지기도 하고 덕분에 챌린지나 공공수어통역 등을 통해서 수어가 주목을 받고, 차별금지법 제정 등 다양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계속되면서 이 모든 순간에 농인과 코다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코다코리아도 있었구요. 많은 분들이 농인, 수어, 코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저희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쁘면서도 방향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수어통역의 질이나 수어통역사의 근무 환경 등 세부적인 것은 농인과 코다, 청인 당사자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책을 통해 저희가 큰 이야기들을 던졌고, 작은 이야기들을 잘 해내야 하는 때가 왔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현화: 책 출간 이후에 강연이나 토크 등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는 걸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교류가 어려워서 안타까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셨어요. 장애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만 읽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여성이나 소수자 담론에 관심있는 분들도 많이 읽으시고 공감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셔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책 출간 이후 수어와 관련된 정책이 매우 많이 생겼어요. 예를 들어 정부 브리핑에 공공 수어통역이 붙도록 제도화되었고, 이 때문에 수어통역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고 수어통역의 질에 대한 논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수어에 대해서도 농인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공유되고 있는데, 좋은 현상입니다.


황지성: 코로나로 많은 대중을 만나지 못한게 저 역시 아쉬웠습니다. 저는 두 작가님들과 다르게 이 책을 통해서 농사회에 저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책에 썼듯이 전 아버지만 농인이고, 아버지가 수어를 사용하지 않아 농사회에 속하지 않은 농인이세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나도 코다인가?’하는 질문을 많이 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저도 농문화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책을 쓰면서 저도 다른 코다들을 통해 농문화에 대해서 더 깊이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무척 좋았습니다.



손은선: 다른 장애인의 가족과는 달리 농인의 자녀는 특별히 코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유난히 코다만 이름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코다 외에 고다, 소다 등 많은 용어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이름들이 특별히 여러 종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코다들이 이런 별도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게 다른 장애인 당사자 운동이나 장애인 가족의 자조모임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이길보라: 농인의 문화와 언어, 청인의 문화와 언어 두 세계를 오가기 때문에 코다라는 말이 생기고 유명해진 듯해요. 사실 코다와 농인이 특별해서 이런 단어들이 생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단어들이 존재하는 건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 따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거예요.
소다는 Sibling Of Deaf Adults의 줄임말이고 농인의 형제 자매를 말하고요, 고다는 Grand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이고 농인의 손자, 손녀를 의미합니다. 모든 당사자들의 경험이 다르고, 장애인 부모와 장애가 없는 자녀의 경험, 장애인 당사자의 형제자매들의 경험이 다르겠죠. 그리고 성별, 성적 지향, 사는 지역, 학력, 국적 같은 것들에 따라 모든 사람이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요. 농사회와 코다 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라는 이름으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활동을 하기도 하고, 형제자매가 장애인인데 본인은 비장애인인 사람들이 모여서 ‘나는’이라는 단체로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를 만들고, 당사자들이 자기 경험을 나누는 것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다양한 이름들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어요. 


황지성: 저도 코다, 소다 같은 이름들이 왜 농사회에서 나왔는지 궁금한데요. 아마 보통은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이 활동을 많이 해 오셨고, 장애인 부모님을 둔 자녀들이 활동하는 경우는 그것보다 새로운 현상이라 이런 이름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합니다. 특별히 농인의 자녀라서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구요. 저는 부모님 한 분은 농인이고 한 분은 지체장애인이라 부모님 또래의 농인을 볼 때도, 부모님 또래의 지체장애인을 볼 때도 저희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저는 지체장애인과 비지체장애인 사이에서 낀 존재라고 느낄 때도 상당히 많아요. 아직 지체장애인의 자녀 모임은 없지만, 그런 단체들이 생기면 같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손은선: 요즘 영화 코다의 인기가 폭발적인데요, 코다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코다에 대해 부모의 장애를 극복한 사람, 감동을 주는 사람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고, 부모가 장애인이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시선도 있는 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는 자기 유명세를 위해 부모의 장애를 이용한다라는 시각도 있는 것 같아요. 코다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코다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현화: 저는 오히려 손은선 선생님이나 참석하신 여러 농인분들께 여쭤보고 싶어요. 코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손은선: 저는 처음 책이 출간됐을 때 놀랐어요. 제가 코다 자녀가 있는 농부모 입장에서, 코다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쓰는 것이 용기있는 행동이라 느껴졌습니다. 저자들이 책을 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농인과 코다, 수어에 대해 알게 되어 좋은 기회가 되었고 그 점이 고마웠습니다. 아마 책이 없었으면 코다나 농인, 수어에 대해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했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즐겁고 고마웠습니다.


이상국: 아카데미에서 코다가 상을 받는 걸 보고 농인 친구들이 모두 좋아하고 축하했어요. 상을 받고 코다가 많이 알려져서 좋았습니다.


이현화: 보라 감독님이 농인 부모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괜찮으신가요?


이상국: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길경희: 코다들이 부모님의 장애때문에 여러 마음고생을 하는 것을 책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용기를 내서 책을 출판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회에 자존감 있는 코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코다의 롤모델이 된 것 같아서 좋습니다. 코다코리아가 생긴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미옥: 코다들이 활동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현화: 감사합니다. 신문이나 여러 인터뷰를 할 때 부모의 장애 등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극복하는 모습을 원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많이 물어봅니다. 그런데 부모의 장애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자라면서 겪었던 즐거움, 행복 등의 감정과 고생 등이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니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코다라는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부정적인 평가들에 대해서는, 내가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이고 농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꼭 부모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이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손은선: 공감합니다. 코다인 자녀를 키우는 제 입장에서는 코다들이 고생이 많다고 생각해요.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지만 코다가 아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이 있겠죠. 코다가 농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농사회에 대해 코다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고, 농사회는 코다와 함께 계속 가는 것입니다.


이길보라: 저는 엄마, 아빠가 농인이어서 제가 유명해진 게 아니고 제가 제 역할을 잘 해서 유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농사회, 청사회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경험이 저의 경험을 더욱더 풍부하게 만들어서 제가 풍부한 영화와 풍부한 글을 쓸 수 있는 재료들로 이생에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부모의 이야기를 팔아서 자기가 유명해지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코다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책 뿐만 아니라 영화도, 자기와 가족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많아지고 있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페미니즘적 측면에서 기존의 주류인, 비장애인 남성들이 주도해왔던 문학, 영화계에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오는 현상과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코다가 코다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농인인 부모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죠. 농문화와 수어는 농인뿐만 아니라 코다의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가끔 수어로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수어로 해보기도 하는데 수어가 제 몸에 체득되어 있고 농문화가 제 몸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코다국제컨퍼런스에 갔을 때 만난 한 코다가 자기는 농사회에서 일하지 않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이제 더이상 수어를 쓸 곳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제 더이상 수어를 쓸 곳이 없는데 언어라는 것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도 그 일이 생길 수 있는데 농문화와 수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고민을 저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사라지면 내 인생에서 없어질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농문화는 제게도 남아 있고 저와 제 동생이 이어갈 것이고 자녀들에게도 물려줄 것인데, 코다의 문화, 코다의 수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라는 논의를 코다 사회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현화: 보라님 이야기에 더해, '코다토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농인들이 쓰는 한국어 문장처럼, 한국어에 수어의 형식을 섞어서 사용을 하는 거죠. 말을 하거나 문자를 할 때, 농인이 수어하는 것처럼 하는 겁니다. 예를들어 보라님하고 저하고 문자하면 “너 지금 뭐?” 라고 치기도 합니다. 대화할 때도, 농인이 ‘알았다’를 ‘알다’라고 문자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어머니가 문자 보내주실 때 항상 그렇게 보내시거든요. 그게 익숙해서 코다들끼리 대화하거나 문자쓸 때 자주 사용을 합니다. 이게 편안하고 재미가 있고, 저희끼리는 굉장히 잘 통하고 이해가 되는데 아마 다른 청인들이 봤을 땐 무슨 말인지 모를 거예요. 이 코다토크를 앞으로 언어학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손은선: 코다가 수어와 농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코다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게 생각보다 많네요.



손은선: 코다로 자라나면서 분노와 우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다 프라이드를 갖고 활동하는 것은 세 분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책의 이현화 선생님 내용 중 코다 프라이드를 갖고 활동하는 걸 볼 때 다른 코다들이 위축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한국사회는 아직 코다들이 자존감을 갖고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지금 자라나는 코다들에게 이것에 대해 하실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현화: 코다 프라이드가 없는 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전 제 스스로가 굉장히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코다들 같은 경우는 나의 이런 모습이 싫다, 부모님이 농인이 아니라 청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고, 수어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경험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엔 그랬어요. 수어 쓰는 게 싫고 농인이 싫고 밉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20대 초반까지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농사회에 들어와서 농인들과 어울린 뒤 마음의 상처들이 아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보라님처럼 수어로 혼잣말을 하기도 하구요. 

지금 전 코다 프라이드를 느끼고, 내가 코다라서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코다는 농사회와 청사회에 모두 소속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움이나 차별 등의 경험들이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들 오해하시는 것이, 코다 프라이드가 있으면 코다에 대해 좋은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 책을 냈을 때 어떤 분들이 “왜 부모가 농인인 것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불만을 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왜 적었냐, 농인이 잘못하고 부족한 부분을 왜 책에서까지 이야기하냐”라는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책은 제 경험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예전엔 수어통역사가 부족해서 제가 통역을 하면서 느끼는 부정적 마음이나 화 같은 것들이 있었고 차별받는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지나간 경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경험들이 합쳐져서 내가 되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게  프라이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프라이드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떤 코다는 내가 코다인 게 싫고, 수어 쓰는 것도 싫지만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겠죠.



손은선: 책에서 코다국제컨퍼런스에 참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요, 가을에 한국에서 아시안코다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하고, 내년 여름에 코다국제컨퍼런스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사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셨으면 하고요, 코다들에게 컨퍼런스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습니다 

컨퍼런스에 세 분이 다 참가해 보셨는데 그 때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었나요? 또 한국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대한 기대감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코다국제컨퍼런스에 농인들과 청인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황지성: 저는 2017년에 다녀왔는데 그 때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 책에서 상당히 많은 분량을 썼어요. 단순히 외국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난 게 좋은 게 아니고 전혀 다른 국적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이 너무 비슷한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동질감이나 해방감이 소중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코다끼리 비슷한 경험을 나누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처럼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코다나 장애인의 자녀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가서 닿고, 공감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컨퍼런스에 다녀오고 2018년부터 바로 책을 썼는데요, 코다국제컨퍼런스가 책을 쓸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용기를 심어줬던 것 같습니다.


이길보라: 저는 코다국제컨퍼런스에 다녀오기 전후의 지성님을 옆에서 보았는데, 엄청난 변화를 목도했습니다. 지성님이 코다 프라이드를 갖는 계기가 컨퍼런스에 참여한 것이었어요. 그전에는 지성님이 ‘나도 코다인가? 내 경험은 이길보라, 이현화와 다른데, 나는 다른 코다와 경험이 다르고 수어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컨퍼런스 다녀오고 나서는 지성이 수어 이름이 생기고 그걸 저희한테 자랑을 했죠. 코다국제컨퍼런스에 가면 수어를 못하는 코다도 있고, 지성처럼 농인과 지체장애인을 부모님으로 둔 케이스도 있고, 지성의 경험이 이현화와 이길보라의 경험과는 달라서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컨퍼런스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지성이 ‘내가 이 코다 지도 안에서 어디에 점을 찍어서 속할 수 있을까’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23년에 코다코리아가 한국에서 컨퍼런스를 여는 건 한국사회에 더 많은 코다 지도를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아직 내가 코다라고 드러내기 싫은 코다도 많고, 이 정체성이 싫은 코다도 있고, 코다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코다도 있습니다.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주최하면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코다들을 한국에 보여주고 싶어요. 서로 다른 코다들의 경험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코다들이 정체성을 깨닫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코다 지도를 만들고 싶다는 큰 계획을 갖고 코다국제컨퍼런스를 한국에 유치했습니다. 

유치를 하고 보니까 너무 큰 일이어서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코다국제컨퍼런스는 코다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라서 다양한 모습의 코다들을 코다들에게만 소개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코다와 농인, 청인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사전행사를 크게 열려고 합니다. 외국의 코다 중에는 수어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수어로 랩을 하거나 락을 하는 사람도 있고, 수어통역사나 연구자들도 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사전행사에서 다양한 해외의 코다 담론과 논의들을 소개하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코다를 소개하고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려고 합니다. 그러니 컨퍼런스는 코다만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과 모든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을 나눠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이현화: 2023년 코다국제컨퍼런스에 대해서 농인들이 참석이나 참관이 가능한지 많이들 물어보세요. 관심은 감사하지만 컨퍼런스 본 행사에는 코다만 참가가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코다 스페이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건 코다의 공간을 의미하는데요, 다른 청인이나 농인 없이 코다만 모여서 상처를 이야기하거나 자기 고백 등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걸 코다가 아닌 사람들이 보면 좋은 자녀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가 부담스럽고, 코다들이 타인에게 평가받는다고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교류하기 위해 코다만 참가가 가능한 걸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본 행사의 전후로 농인, 청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전행사와 사후행사가 있습니다.



손은선: 수경 이삭슨이 쓴 부분에 많은 코다들이 성인이 된 후 농사회를 나가기도 하고, 여전히 농사회에서 활동을 하기도 한다고 나오는데요, 여러분은 서로 일하는 분야가 다릅니다만 코다로서 수어와 농문화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현화: 저는 농사회에 매우 속해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 국립국어원에서 수어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농인과 수어를 많이 접하고 있어요. 일할 때 코다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너무 농사회에서 속해있고 농인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어서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있어요. 제가 참가한 컨퍼런스에서 만난 독일 코다는 농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농아동을 교육하는 일에 가치를 크게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작은 것들도 쉽게 넘길 수 없어  스트레스가 심해 번아웃이 오고 병원에서 2주 휴식을 권고받기도 했다고 해요. 일과 개인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그걸 보면서 공감했어요. 수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제가 농사회와 너무 가깝기 때문에 감정적 소모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청인과 코다의 입장이 다른 경우가 반복되면 ‘내가 이상한건가? 내가 틀렸나?’하는 고민이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코다들을 만나서 코다의 관점으로 공감을 받을 때면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황지성: 저는 수어를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바빠서 못 배우고 있어요. 예전에 수어를 진지하게 배워서 아버지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수어를 다 까먹으신거예요. 농학교를 초등학교 몇 학년 다니고 그만두신 다음에 주변에 농인들이 없어서 다 잊어버리신 것 같아요. 그 후로는 아버지랑 수어로 얘기하겠다는 목표가 사라지니까 갑자기 재미없어지고 의욕을 상실했었거드요. 그래도 코다로서 농문화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수어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갖고 있습니다. 

저는 농인이 더 특별하다거나 더 많이 소외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장애인으로서 공통된 경험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해서 한국사회 전반의 장애인의 문화,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게 제게는 부모님의 유산이라 앞으로 아마 계속  연구를 하면서 살아갈 것 같습니다.


이길보라: 저는 코다의 유산이 농문화와 수어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이중문화로서의 농문화를 부모에게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일본인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후쿠오카와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는데요, 한국인으로서 일본인 파트너와 함께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며 사는 경험이 코다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이현화 선생님이 청인과 농인 사이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저는 이걸 한국인으로서도 느끼고 코다로서 느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농인들은 음성언어를 강요하는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음성언어를 듣지 못하고 또박또박 말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잖아요. 일본에서도 재일 조선인이나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로서 계속 억압을 받습니다. 일본어를 잘 못하거나 문화가 다르거나 피부색이 다른 경우 억압을 받는데 이게 꼭 농인과 청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문화가 공존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구조가 있을 때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저는 농인의 자녀, 코다로서 억압을 평생 경험해왔기 때문에 다른 소수자의 경험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서 연대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그래서 코다로 태어나 그런 경험을 한 것이 감사합니다. 코다이기 때문에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느낄 수 있고 어떻게 이런 구조를 바꿔갈 수 있을까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제 유산인 농문화와 수어는 새로운 세상과 서로 다른 문화 사이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예술인으로서 매체와 매체 사이를 넘나들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영감을 충분히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큰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하정: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황지성: 아빠, 내가 어렸을 때는 너무 아빠를 몰랐어요.


이길보라: 저는 너무 뻔하지만 어린 제게는 너와 같은 경험을 하는게 너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구요, 부모님께는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부모님이 저를 누구보다 잘 길러주셨고, 제가 사춘기 시절에 좋아하는 남자애랑 걸을 때 못본척 하고 갈 때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내 존재를 부정한다면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제 정체성을 똑바로 깨닫고 감히 엄마, 아빠를 부끄러워할 수 없구나 생각했어요. 그 점이 감사합니다.


이현화: 어린 이현화를 쓰다듬으면서 “넌 나쁘지 않아.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어요. 엄마한테는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엄마가 항상 제게 고생 많았다, 수고했다고 말했기 떄문에 저도 똑같이 말해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