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느리게 변화하는 사회를 바라보며
장현정 (전 코다코리아 사무국 활동가, 현 운영위원)
수많은 우연을 거쳐 약 2년 동안 코다코리아의 활동가로 일했다. 만약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보지 않았다면, 코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사회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면, 코다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다채로운 활동과 경험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나는 코다이고, 사회 현상에 무척 관심이 많고, 코다 모임에 여러 번 참여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인상깊게 감상했기에 지금의 ‘현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앎과 낯섦은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몫이 된다. 30여 년간 코다로 살면서 항상 나의 가정 환경과 농인 부모, 나를 설명하고 그에 수반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다.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낯선 위치에 있어서 그랬다. 모를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모르면 불편하지 않아도 되고 알리지 않아도 된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고 많은 것을 일찍 알아야만 했던 코다로 사는 것은 앎과 낯섦의 연속이다. ”정말 모르고 싶다, 모르고 싶어!”
멋지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코다코리아 활동가로 일하며 많은 행사를 운영했고, 여러 매체에 얼굴을 비추며 ‘코다’를 소개했다. 코다를 다룬 영화·드라마도 흥행했기에 이제는 사회에서 ‘코다’라는 존재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줄 알았다. 안일했다. 상근활동가로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2023년 말에도 여전히 코다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농인을 농민으로 알아듣고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것이냐고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의미를 알려주면 겨우 돌아오는 말은 “멋지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였다.
한국 사회에서 코다로 살면서 매번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더니 이젠 ‘멋지다’는 수식어가 붙는 게 꽤 흥미롭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모님의 수어를 전달할 필요가 있어 통역을 하고, ‘코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코다를 알릴 필요가 있어 코다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나에겐 배가 고프면 밥을 지어 먹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 거기에 자꾸 다른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따라 붙는다. ‘멋지다’는 무척 마음에 드는 형용사지만 나는 그걸 부모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나의 노력에 따른 성과로서 듣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비틀린 자격지심은 아닐까 고민했으나 이 사회가 느리게 변화하고 때로는 깊은 고민 없이 해맑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면을 벗어나 한 명의 코다로
그런 한국 사회에서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코다와 코다코리아가 늘 신선한 존재로 받아 들여진다는 점이다. 개봉한 지 10년 가까이 된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아직까지도 상영되는 이유는 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존재에 대해 조명한다는 점일 것이다. 언제나 (혹은 언제까지?) 뉴페이스여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가 좋다.
코다코리아는 정기적으로 코다 모임을 개최할 뿐만 아니라, 코다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고, 여러 농인 단체와 함께 농교육·코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코다 캠프와 코다국제콘퍼런스도 개최했고, 강연과 인터뷰 역시 해왔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코다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과 그럴듯한 사연을 원한다.
이제는 수면에서 이목을 사로잡는 존재로만 남고 싶지 않다. 물 밖을 나가고 싶다. 코다는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전설의 인어 같은 존재가 아니다. 물 밖에 있는, 느리게 변화해도 괜찮고 때로는 깊은 고민 없이 해맑기만 한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다. 이제는 코다, 농인, 수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지 않다. 수어가 만국 공통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설명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다. 〈코다〉라는 문제집 맨 앞장만 풀고 있으면 심화 학습은 언제 해? 수업 진도 좀 나가자!
코다코리아가 그저 멋지고 좋은 일을 하는 단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코다와 농인의 마땅한 권리를 찾고 청인과 더불어 한 발짝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사회 구성원이었으면 한다. 코다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사회 어디에나 있다. 그렇게 놀랄 일도 신기할 일도 아니다. 나도 이제는 수면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여전히 느리게 변화하는 사회를 바라보며
장현정 (전 코다코리아 사무국 활동가, 현 운영위원)
수많은 우연을 거쳐 약 2년 동안 코다코리아의 활동가로 일했다. 만약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보지 않았다면, 코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사회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면, 코다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다채로운 활동과 경험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나는 코다이고, 사회 현상에 무척 관심이 많고, 코다 모임에 여러 번 참여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인상깊게 감상했기에 지금의 ‘현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앎과 낯섦은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몫이 된다. 30여 년간 코다로 살면서 항상 나의 가정 환경과 농인 부모, 나를 설명하고 그에 수반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다.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낯선 위치에 있어서 그랬다. 모를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모르면 불편하지 않아도 되고 알리지 않아도 된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고 많은 것을 일찍 알아야만 했던 코다로 사는 것은 앎과 낯섦의 연속이다. ”정말 모르고 싶다, 모르고 싶어!”
멋지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코다코리아 활동가로 일하며 많은 행사를 운영했고, 여러 매체에 얼굴을 비추며 ‘코다’를 소개했다. 코다를 다룬 영화·드라마도 흥행했기에 이제는 사회에서 ‘코다’라는 존재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줄 알았다. 안일했다. 상근활동가로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2023년 말에도 여전히 코다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농인을 농민으로 알아듣고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것이냐고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의미를 알려주면 겨우 돌아오는 말은 “멋지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였다.
한국 사회에서 코다로 살면서 매번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더니 이젠 ‘멋지다’는 수식어가 붙는 게 꽤 흥미롭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모님의 수어를 전달할 필요가 있어 통역을 하고, ‘코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코다를 알릴 필요가 있어 코다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나에겐 배가 고프면 밥을 지어 먹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 거기에 자꾸 다른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따라 붙는다. ‘멋지다’는 무척 마음에 드는 형용사지만 나는 그걸 부모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나의 노력에 따른 성과로서 듣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비틀린 자격지심은 아닐까 고민했으나 이 사회가 느리게 변화하고 때로는 깊은 고민 없이 해맑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면을 벗어나 한 명의 코다로
그런 한국 사회에서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코다와 코다코리아가 늘 신선한 존재로 받아 들여진다는 점이다. 개봉한 지 10년 가까이 된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아직까지도 상영되는 이유는 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존재에 대해 조명한다는 점일 것이다. 언제나 (혹은 언제까지?) 뉴페이스여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가 좋다.
코다코리아는 정기적으로 코다 모임을 개최할 뿐만 아니라, 코다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고, 여러 농인 단체와 함께 농교육·코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코다 캠프와 코다국제콘퍼런스도 개최했고, 강연과 인터뷰 역시 해왔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코다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과 그럴듯한 사연을 원한다.
이제는 수면에서 이목을 사로잡는 존재로만 남고 싶지 않다. 물 밖을 나가고 싶다. 코다는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전설의 인어 같은 존재가 아니다. 물 밖에 있는, 느리게 변화해도 괜찮고 때로는 깊은 고민 없이 해맑기만 한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다. 이제는 코다, 농인, 수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지 않다. 수어가 만국 공통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설명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다. 〈코다〉라는 문제집 맨 앞장만 풀고 있으면 심화 학습은 언제 해? 수업 진도 좀 나가자!
코다코리아가 그저 멋지고 좋은 일을 하는 단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코다와 농인의 마땅한 권리를 찾고 청인과 더불어 한 발짝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사회 구성원이었으면 한다. 코다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사회 어디에나 있다. 그렇게 놀랄 일도 신기할 일도 아니다. 나도 이제는 수면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