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시선] 다시는 에버랜드 안 올 겁니다 - 유슬기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한국수어교원)


다시는 에버랜드 안 올 겁니다

유슬기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한국수어교원)


지난 4월, 가족들과 에버랜드를 다녀왔다. 부모님과 함께 간 것은 처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복지할인 제도를 확인했다. 에버랜드에는 요금할인, 놀이기구 탑승예약이라는 두 가지 복지 혜택이 있다.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 지체장애인의 경우 두 가지 혜택을 모두 적용할 수 있으나 청각⋅언어장애인에게 해당되는 것은 입장권 할인 뿐이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오랜 시간 줄을 기다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되어 탑승예약 제도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답변이 있었다. 

에버랜드에서는 복지할인을 제공하고 있지만 신용카드 할인율이 더 높은 경우가 있다. 할인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애할인보다 신용카드 할인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이러한 정보는 오로지 한글, 음성언어 위주로 제공되고 있었다. 


손님, 휴대폰은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에버랜드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양한 동물을 보는 것이다. 로스트밸리는 버스를 타고 초식동물을 구경하는 놀이기구다. 버스를 타고 출발하자마자 직원은 친절하게 손을 흔들며 동물에 대한 소개를 이어나갔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동물은 하마였다. 

신이 난 엄마는 버스 바깥 쪽으로 휴대폰을 내밀어 사진을 찍었다. 직원은 엄마에게 휴대폰을 창밖으로 내밀지 말고 촬영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들리지 않기에 촬영을 이어갔다. 자칫하면 진상손님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빠르게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했고, 엄마는 “아(깨달음)”하고 수어로 대답했다. 엄마와 아빠는 이해하기 어려운 직원의 입모양을 한참 보고는 내 눈치를 봤다. 그리고는 동물에게만 시선을 직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동물을 바라보고 귀를 직원에게 집중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이 에버랜드에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함이었다. 엄마, 아빠는 지금까지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다며 에버랜드의 불꽃놀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밤 9시, 불꽃놀이를 위한 오프닝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아빠는 잠에 들었다. 불꽃놀이 시작을 알리는 애니메이션에는 한글자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15분이라는 긴 침묵같은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다. 불꽃놀이가 진행되는 10분 동안은 어떤 통역도 필요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불꽃과 팡팡 터지는 소리의 진동을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우리의 눈속에 가득 담긴 불꽃놀이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림의 떡

에버랜드의 모든 안내는 음성언어 위주로 이루어진다. 줄을 서는 중간중간 외국인을 위해 영어, 중국어 등으로 안내문이 제공되거나 안내 영상이 송출된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한글 자막과 수어는 볼 수 없었다. 그날 엄마와 아빠는 모든 상황에서 언어적으로 배제됐다. 표를 사는 순간부터 놀이기구를 타고 에버랜드의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하는데 있어 그 어떤 정보접근권도 보장되지 않았다. 

부모의 문화예술 향유 경험은 자녀의 문화예술 경험에 큰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문화향유권과 정보접근권에서 소외와 배제의 경험을 갖는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부정적인 경험은 (비)자발적으로 문화를 향유하지 않는 선택으로 이어지고, 장애인의 가족 및 그의 자녀는 자연스럽게 문화경험과 멀어지게 된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장애의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온전히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곧 편리함으로 이어져 연령, 성별, 국적, 장애의 유무에 관계 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 대부분의 문화시설에서는 모두를 위한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는 미래의 코다들이 동물과 불꽃놀이를 보며 통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버랜드와 같은, 동심이 가득한 곳에서 코다 아동도 그저 아이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만큼은 어른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림의 떡과 같은 이런 일들, 언제까지 (비)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납득해야만 할까? 모두를 위한 놀이공원이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유튜브] 네, 다시는 에버랜드 안올겁니다. / 유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