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시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농맹인의 자녀에게 - 김주민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촉수화통역사)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농맹인의 자녀에게

김주민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촉수화통역사)

코다로 자라면서 농인 부모님이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춘기에는 창피하기도 했다. 지금은 부모가 자랑스럽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경험으로 얽혀 있다. 다른 코다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수어통역사는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집에 전화가 걸려올 때도, 친척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심지어 집앞 슈퍼만 가더라도 끊임없이 통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촉수화통역사로 농맹인,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농맹인은 시청각장애인으로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에 가진 사람을 말한다. 영어로는 Deaf-Blind라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헬렌 켈러가 있다. 촉수화는 농맹인의 여러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로, 농인이 사용하는 수어를 손 위에 얹어 촉각으로 대화하는 방식이다. 상대방의 메세지를 촉각으로 감각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 방식은 내게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손과 손을 맞잡으며 손을 통해 느껴지는 이들의 감정과 표현 방식. 나는 이 일을 통해 농맹인들과 깊은 연결감을 느끼며, 그들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코다로 자라며 겪었던 감정과 경험은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농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장애인과 부모님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해야 했던 내가, 농인보다 훨씬 더 생소한 장애인 농맹인을 만나는 이들의 중간 역할을 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설명해야만 아주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나의 과거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난 배움과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촉수화 통역사로서 일한다. 


농맹인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코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농맹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반응은 부러움이다. “수어를 잘해서 부럽다” “수어를 잘하니 부모님과 대화하기 좋겠다” “내 자녀도 너처럼 수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잔존 시력이 남아 있을 때는 자녀와 어느 정도 대화를 하곤 했지만 농맹인이 되고 나서는 그러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반가움이다. 부모님이 농인이라고 하자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마음을 너는 잘 알겠지” “너는 코다니까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구나” “역시 코다니까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구나, 속이 시원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 마음 깊숙이 자리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농맹인들과 함께 있으면 나의 농인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로는 그들의 자녀가 된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들이 다른 수어통역사들보다 나를 더 편하게 여기고 더 자주 나를 찾는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타인인 나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수어를 잘한다면 아니, 수어를 모르더라도 부모님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한 농맹인이 이렇게 말했다. 

“자녀가 바쁘기도 하고 방해가 될까봐 쉽게 연락을 못하겠어. 내가 부끄러울 수도 있잖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하지도 못하니 창피하지 않을까?”

그 순간 마음이 아팠다. 아닐 거라고 대답했지만 나 자신도 농인 부모님과 의사소통의 장벽을 느낄 때가 있었다. 너무나도 답답했던 순간이었는데 농맹인의 자녀는 그 벽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을 테다. 시청각장애라는 중복의 장벽을 마주하며, 농맹인의 자녀들은 얼마나 큰 고통과 외로움을 감내하고 있을지, 그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한 채 홀로 오롯이 감당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내 가슴은 더 무거워진다. 


나 역시 농인의 자녀로 자랐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장벽 앞에서 홀로 외로움을 감내하며 자라온 시간들이 있다. 때로는 버거웠고 때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지금의 나와 코다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믿는다. 촉수화통역사로 일하면서 코다로서의 정체성과 촉수화통역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된다. 


농인이 내는 소리를 데프보이스(Deaf voice)라고 하는데 농맹인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적다. 주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농맹인은 데프보이스를 더 많이 낸다. 보이지 않으니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탐색하기 위해 손을 뻗고 더듬기도 하며 사물을 만진다. 그러다 간혹 사람을 만지기라도 하면 성추행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농맹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기분 나빠하며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농맹인들은 항상 조심하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기 어려운 농맹인은 항상 오해를 받는다. 그건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농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농맹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나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농맹인의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코다라고, 그러니 혼자서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때 우리는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지며 성장할 수 있을 테다.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다.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장애와 다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코다로 살아가는 것, 코다라는 것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지만 비슷하고도 같은 경험을 한다는 걸 나눈다면 조금의 짐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더 많은, 다양한 코다들을 만나기를 소망한다. 내 이야기가 농맹인의 자녀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이야기 또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다리며 응원한다. 언제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모든 코다들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


사진 헬렌켈러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제공